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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은 특새주간인가

<고난주간(?)은 고난의 특새주간인가>

이맘때가 되면, 슬슬 여기저기 같은 문구가 올라온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그런데 이 주간의 이름부터가 간단치 않다. 한국 개신교는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부르고, 천주교는 '성주간(聖週間)'이라 부른다. 영어권의 'Holy Week', 독일 루터교의 'Karwoche(슬픔의 주간)'까지 합치면, 같은 일주일을 놓고 고통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과 거룩함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이 공존하는 셈이다.

그런데 4세기에 이 주간을 처음 명명한 사람들은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다. 아타나시우스와 에피파니우스가 고른 단어는 '고난'도, '거룩'도 아닌, '위대한'이다. 그리스어 '하기아 카이 메갈레 헤브도마스(Ἁγία καὶ Μεγάλη Ἑβδομάς)', 직역하면 '거룩하고 위대한 한 주'. 그리스와 로마의 전례서들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전한다. 이 주간에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수난주간', 또는 '고난주간'이라 부르면 예수의 고통이 전면에 나서고, '성주간'이라 부르면 이 시간의 경건한 성격이 부각된다. 그러나 '위대한 주간'은 둘 다와 결이 다르다. 고난도, 막연한 거룩함도 아닌, 하나님의 결정적 행동 전체의 스케일을 가리킨다. 고난과 죽음과 침묵과 부활이라는 드라마가 단 일주일 안에 압축되어 있다는 고백이 이 명칭 안에 담겨있다. 고난만 떼어내면 슬픔의 주간이 되고, 거룩함만 남기면 경건 행사가 된다. 초대교회는 그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았다.

한국 개신교가 '고난주간'이라는 이름을 택한 것은 십자가 신학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부활절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고난에서 멈출 때, '위대한'이라는 형용사에 담겨 있던 서사의 크기가 사라진다. 이 장에서는 편의상 '수난주간'이라는 명칭을 쓰되, 이 주간이 본래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행하신 주간'이었음을 기억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란다.

에게리아가 목격한 일주일

수난주간이 어떻게 오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추적하려면, 4세기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 380년경, 에게리아(Egeria)라는 히스파노-로마 출신의 여성 한 명이 성지를 순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예배의 풍경을 고향의 자매들에게 편지로 보냈는데, 이 편지가 바로 《에게리아 여행기》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지 순례 기록이자, 수난주간 전례에 대한 최초의 눈 증언이다(Egeria, Itinerarium Egeriae, c. 381–384). 1884년 이탈리아 아레초의 수도원 도서관에서 11세기 필사본으로 발견될 때까지, 이 편지는 천오백 년 동안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에게리아가 묘사한 수난주간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장소'에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배를 한 건물 안에 가두지 않았다. 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서, 바로 그 사건을 기념했다. 종려주일 오후가 되면 감람산 꼭대기에서 행렬이 시작되었다. 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어깨 위에 올라탔고, 종려나무와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주교를 따랐다. 주교는 예수의 역할을 재현하며 걸었고, 행렬은 도시 전체를 가로질렀다(Egeria, Itinerarium Egeriae, 31). 목요일 밤에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이동하여 예수의 체포를 기억했고, 금요일 아침에는 골고다 위에 의자를 놓고 주교가 앉았다. 아마포 천으로 덮인 탁자 위에 십자가 나무 조각이 놓이면, 주교가 양 끝을 붙잡고 있는 사이로 신자들이 한 사람씩 다가왔다. 이마와 눈으로 나무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지나갔다. 에게리아는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한 가지 사연을 덧붙인다. 한번은 누군가가 십자가 나무를 이빨로 물어뜯어 조각을 훔쳐간 일이 있었고, 그래서 부제들이 양옆에 바짝 붙어 감시해야 했다고(Egeria, *Itinerarium Egeriae*, 37). 신앙의 열정과 유물에 대한 탐욕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에게리아는 담담하게 전한다.

이것이 '현장 전례(stational liturgy)'의 원형이다. 예배가 도시를 가로질러 움직였고, 신자들은 성경 이야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에게리아의 증언이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수난주간의 본래 정신은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었다. '일어서서 걷는 것'이었다. 설교를 듣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까지 발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부활 전야에서 삼일로, 삼일에서 일주일로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정교한 일주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가장 오래된 건 '부활 전야 예배(Paschal Vigil)'뿐이었다. 2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 밤에 깨어 지키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의 축제로 기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밤을 "모든 철야의 어머니(mater omnium vigiliarum)"라 불렀는데(Augustinus, *Sermo* 219), 이 하룻밤이 삼일로 확장된 건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의 일이다. 먼저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이 별도의 전례일로 분리되었고, 이어서 성목요일이 추가되어 '거룩한 삼일(Triduum Sacrum)'이 형성되었다. 4세기 말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이 삼일을 짧고 굵은 문장 하나로 요약했다. "고난받으시고, 쉬시고, 부활하셨다(et passus est, et quievit, et resurrexit)"(Ambrosius, *Epistola* 23.12–13). 파스카 신비의 완벽한 압축이다.

삼일 구조가 온전한 거룩한 일주일로 확장된 데에는 예루살렘 전례의 영향이 크다. 에게리아가 묘사한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는 각 날에 이미 고유한 전례가 배정되어 있었고,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유력한 교회들이 이 모델을 받아들이면서 수난주간이 그리스도교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면서 본래의 시간 감각은 상당 부분 흐려졌다. 성목요일 저녁 예배가 오전으로 앞당겨지고, 부활 전야 예배가 토요일 아침으로 옮겨지는 식이었다. 전례가 원래의 시간대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이 왜곡은 1955년 교황 비오 12세의 수난주간 전례 복원과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을 거쳐서야 비로소 교정되었다.

각 날이 고유한 문법을 가진 일주일

수난주간의 본래 구조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각 날이 고유한 전례적 행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주간은 동일한 형식의 예배가 일곱 번 반복되는 주간이 결코 아니다.

종려주일에는 행렬이 있었다. 종려나무나 올리브 가지를 들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행위 자체가 예배였다. 성수요일에는 가룟 유다의 배반을 낭독했고, 성목요일에는 세 가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참회자들과의 화해, 성유 축성, 그리고 저녁 성만찬 제정의 기념이 그것이다. 예배가 끝나면 제대/성찬대를 벗기는 의식(Stripping of the Altar)이 이어졌다. 제대/성찬대 위의 천과 장식을 모두 걷어내어 벌거벗은 나무만 남기는 이 행위는, 십자가 위에서 옷 벗김 당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침묵의 상징이었다.

성금요일의 전례는 교회 전통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이 날은 미사를 거행하지 않는 날이다. 새로운 성찬을 봉헌하는 대신, 전날 축성해 둔 성체를 나누어 주는 '미리 축성된 예물의 전례(Missa Praesanctificatorum)'를 거행한다. 십자가 경배, 수난복음 낭독, 장엄한 중보기도가 이 날의 중심이다. 반면 루터교 전통에서 성금요일은 오히려 성찬이 적극 권장되는 날이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날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내어주셨으니, 그 몸과 피를 성찬으로 받아 먹는 것이야말로 이 날에 가장 합당한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로마는 성찬을 거두고 루터교회는 성찬을 베푼다. 이 차이는 단순한 관습의 차이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어떤 방식으로 현재화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판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력의 가장 엄숙한 날에 전통마다 정반대의 답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은 수난주간의 전례가 얼마나 깊은 신학적 결단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성토요일은 이 일주일에서 가장 비어 있는 날이었다. 침묵과 금식의 날이자, 예수가 무덤에 누워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밤, 어둠 속에서 부활초에 불을 붙이는 루체르나리움(Lucernarium)과 함께 부활 전야 예배가 시작되었고, 이 밤에 세례가 집행되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밤의 예배의식은 그 자체가 복음의 축약이었다.

각 날의 예배가 서로 다른 감각을 요구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행렬, 세족, 제대/성찬대 벗김, 십자가 입맞춤, 침묵, 불 밝힘. 이 모든 것은 몸을 쓰는 행위다. 부활을 앞둔 일주일은 머리로 이해하는 주간이 아니라, 몸으로 따라가는 주간이었다.

한국 교회는 이 주간을 어떻게 지키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 자신의 풍경을 돌아보자. 한국 개신교 대다수 교회에서 '고난주간'이란 사실상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뜻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에 모여 십자가 관련 본문으로 설교를 듣고, 기도하고, 해산한다. 형식은 매일 거의 동일하다. 찬송, 기도, 설교, 기도, 찬송. 목요일이 특별히 다르지 않고, 금요일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성토요일의 침묵은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러니 토요일 밤에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며 부활을 기다리는 전야 예배를 지키는 교회는 거의 찾기 어렵다.

수난주간의 본래 정신은 '각 날이 서로 다른 문법을 가진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관행은 이 풍성한 서사를 '매일 같은 형식이 반복하는 새벽기도 주간'으로 균질화해 버렸다. 성목요일에 세족식을 행하는 교회는 극소수이고, 성금요일에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 참여하는 루터교적 전통도, 성찬을 거두고 십자가 경배에 집중하는 로마적 전통도 의식적으로 따르는 교회는 더더욱 드물다. 일곱 날의 고유한 서사가 증발하고, '십자가를 묵상하는 새벽기도 여섯 번'만 남은 셈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고난주간 특새가 끝나면 성도들은 새벽기도를 멈춘다. 고난주간의 열심은 그 한 주에 갇히고, 부활절기의 50일로 이어지지 못한다. 부활 주일 하루에 삶은 달걀을 나누고 칸타타를 부르면 그냥 끝이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돌아보라. 부활절부터 오순절까지 50일 동안 금식도 금했고 무릎 꿇는 것도 금했다. 기쁨이 의무였기 때문이다. 터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단언했다. "이 50일 동안 무릎을 꿇는 것은 합당치 않다"(Tertullianus, De Corona, 3). 성령강림까지 이어지는 부활절기의 50일 축제는 사라지고, 한 주의 고난만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난은 열심히 지키되 기쁨은 하루 만에 접어버리는 교회, 이것이 과연 '위대한 주간'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돌아볼 일이다.

물론 변화의 조짐도 있다. 일부 교회에서 성목요일 세족식과 성만찬,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 토요일 밤 부활 전야 촛불 예배를 시도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 날짜별로 본문과 전례 형식을 달리하는 교회도 등장한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위대한 주간의 본래 정신을 되찾으려는 이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걷는 예배의 회복

수난주간의 원형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이 주간은 설교를 '듣는' 주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는' 주간이었다. 에게리아가 예루살렘에서 본 것은 신자들이 감람산에서 골고다까지, 겟세마네에서 빌라도의 관저까지 걸어서 이동하며 각 장소에서 해당 본문을 읽는 광경이었다.

물론 우리에게 골고다는 없다. 겟세마네 동산도 없다. 그러나 수난주간의 정신을 회복한다는 것이 예루살렘의 지형을 복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각 날에 고유한 전례적 행위를 돌려주라는 뜻이다. 목요일 저녁에 세족식과 성만찬을 거행하고, 예배가 끝나면 제대/성찬대 위의 장식을 걷어내는 것. 금요일에 각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찬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든, 성찬 없이 십자가 경배와 침묵으로 그 죽음 앞에 서든, 이 날만의 고유한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토요일에 아무 예배도 드리지 않으며 '사이의 시간'을 견디는 것. 그리고 토요일 밤,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를 밝히며 부활의 첫 소식을 기다리는 것. 씻김, 침묵, 어둠, 불 밝힘. 이것이 거룩하고 위대한 주간의 문법이다. 이 문법은 동일한 형식의 새벽기도회 여섯 번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만들어낸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주간을 '위대한 주간'이라 부른 까닭을 되새겨보자. 고난만 남기면 이 주간은 슬프기만 한 주간이 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일주일 안에 고난과 죽음, 침묵과 부활을 모두 담았다.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위대한 주간이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새벽기도의 열심으로 축소할 일이 아니다. 이 일주일 전체가 품고 있는 서사의 크기를 되찾아야 한다.

글.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2026년 3월 21일 오전 1:31by 남대진